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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맨유에 대해서 알아보자(4)

Beat. 2016. 9. 25. 01:14

11. 브라이언 롭슨(1981~1994) 영원한 맨유의 주장

기록 : 461/99 경기/골

수상 : PFA 올해의 팀 6회

우승 : 리그 2회, FA컵 3회, 리그컵 1회, 채리티실드 3회 UEFA컵 1회 UEFA 슈퍼컵 1회




영국 축구 역사상 가장 완벽했던 미드필더라고 불린다. 잉글랜드의 축구 전문가들이 잉글랜드 국가대표의 역사를 통틀어서 베스트 팀을 선정할 때 로보(ROBBO), 캡틴마블 이라는 애칭을 가진 브라이언롭슨의 이름은 보비 찰튼, 보비 무어 등과 함께 빠지지 않고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름이다. 왼발을 사용하는 롭슨은 그야말로 만능 선수였다. 그라운드를 쉬지 않고 누비면서 상대의 공격 길목을 차단하고, 일대일 상황에서는 정확하고 강력한 태클로 공을 빼앗는 능력도 탁월했고, 공격시에는 직접 드리블을 시도해 그대로 상대 골문으로 돌진하거나 정확한 패스를 구사할 수 있었으며, 문전에서는 정확한 슈팅으로 득점까지 올린 전형적인 박스투박스 플레이어였다.

타고난 리더였던 롭슨은 강인한 정신력과 끝없는 승부욕의 소유자였으며 맨유의 붉은 유니폼을 입었을 때나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의 흰 유니폼을 입었을 때나 가리지 않고 항상 120%의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그는 맨유에 있던 내내 정신적인 멘토 역할을 누구보다도 확실히 수행했고, 실력적인 면에서도 그의 중원 조율 능력은 맨유를 다시금 정상으로 올려놓는데 일조했다. 숱한 스카우트 제의를 마다한 채 침몰한 맨유를 이끌었고 그의 의리에 감동한 맨유팬들은 그를 위대한 주장이라고 칭송하였다. 브라이언 롭슨은 82~94년까지 무려 12년간 맨유 주장으로써 역대 최장기간 주장으로 기록되고 있으며 맨유를 잉글랜드 명문 클럽으로 다시금 발돋움 할 수 있게 만든 주인공 중 한명으로 회자 되고 있다.




12. 에릭 칸토나(1992~1997) 올드 트래포드의 왕

기록 : 205/93 경기/골

수상 : 발롱도르 3위 1회, PEA 선수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 1위, PEA 올해의 팀 1회, FWA 올해의 선수 1회

우승 : 리그 4회, FA컵 2회, 채리티실드 3회


롭슨의 은퇴 이후 옷깃을 세운 채 황제처럼 필드를 들어서서 강한 카리스마를 뿜어대던 이가 있었으니 프랑스 출신의 에릭 칸토나의 유니폼에는 7번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롭슨의 7번에는 힘겨웠던 눈물이 있었다면 칸토나의 7번에는 영광이 있었다. 1992~93 시즌 맨유에 입단하기 전까지 칸토나는 그야말로 트러블 메이커의 전형이었다. 프랑스 대표로 뛸 당시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있던 앙리 미셸(현 코트디부아르 감독)을 향해 세상에서 가장 무능력한 감독이라고 악평하며 1년간 대표팀 경기 출전정지 처분을 받아야 했고 마르세유에서 뛰던 시절에는 교체 아웃되자 불만을 품고감독 얼구에 유니폼 상의를 던졌고 판정에 불만이 있으면 심판 머리에 공을 던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6개월을 뛰다맨유로 이적해왔다. 그는 이전까지 자신이 몸담던 팀에서 1년도 채 버티지 못했던 풍운아였다. 그런 그가 맨유에서 만난 감독은 알렉스 퍼거슨이였다. 칸토나는 퍼거슨 감독을 만나 자신의 뜻을 맘껏 펼쳤다. 맨유가 그를 영입하면서 리즈에 지불한 이적료는 단 100만 파운드였다. 칸토나는 붉은 유니폼을 입은 첫해 그 몸값의 배 이상의 활약을 보여주었다. 맨유를 26년만에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그 이듬해에도 우승컵은 칸토나의 발끝에서 결정되었다. 또한 그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상대를 압도하고 동료들을 이끌었다. 그 개성 강한 피터 슈마이켈과 로이킨도 칸토나의 그늘에서는 벗어 날 수 없었다. 



13. 데이비드 베컴(1994~2003)

기록 : 394/35 경기/골

수상 : FIFA 올해의 선수 2위 2회, 발롱도르 2위 1회, PFA 올해의 영플레이어, UEFA 클럽 올해의 선수, FWA 공로상

우승 : 리그 6회, FA컵  2회, 커뮤니티 실드 2회, 챔피언스리그 1회, 인터컨티넨탈컵 1회

베컴은 칸토나의 은퇴와 함께 7번을 부여받았다. 오른발의 마법사인 베컴이 뛰던 당시 맨유는 우승을 휩쓸던 전성기였다. 데이비드 베컴은 조지 베슽느 이후 7번 선수들 중 유일한 맨유 유스 출신 선수이기도 하다. 맨유 유스팀의 일원이 되어 팀을 이끌었고, 92년 5월 잉글랜드 FA 유스컵 우승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며 퍼거슨 감독에게 눈도장을 찍는다. 이후 베컴은 93년 5월이 되어서 맨유 1군으로 승격했다. 하지만 당시 맨유는 매시즌 우승을 노리는 강팀이었다. 아무리 유스팀에서 날고 기었던 베컴이었다 해도 세계 최고의 선수들만 있다는 맨유에서 그가 주전을 차지 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1군 승격후 경기에 결장하는 것이 잦아졌고 그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좌절감에 몸부림쳤다. 그런 베컴을 본 퍼거슨 감독도 베컴의 재능이 썩는 데에 아쉬워했고, 결국 94~95 시즌에 베컴은 당시 리그2 소속이었던 프레스턴이라는 팀으로 임대되었다. 프레스턴은 베컴을 주전 선수로 출전시켜줬고, 이는 그가 다시금 자신감을 회복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프레스턴에서의 경험으로 5경기 2골이라는 성과를 거두었고, 임대 2달차가 되던 때에 맨유의 급작스러운 복귀 요청으로 다시 맨유로 복귀하였다. 주전 선수들이 모두 부상으로 쓰러진 것이였다. 이에 퍼거슨 감독은 급히 프레스턴으로 임대가 있던 베컴을 불러들였고, 급한 대로 그를 오른쪽 윙 플레이어로써 출전시킨다. 베컴은 어린 나이에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킥력을 선보였고 자신의 이름을 잉글랜드 전역에 각인시켰다. 그런 베커의 활약에 힘입은 맨유는 프리미어리그 우승과 FA컵 우승에 일조했다. 그 이후 시즌이 끝나자 몇몇 스타 선수들이 이적해버리고 퍼거슨 감독은 영입 대신 유스 출신 선수들을 기용할 것을 결정, 이에 영국 언론과 팬들의 질타를 받았다. 하지만 퍼거슨 감독은 구단의 유스시스템에 확신에 차 있었다. 베컴 역시 그런 퍼거슨 감독의 신회에 부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용한 이적시장을 보내며, 시즌이 시작외었다. 시즌이 시작되자 베컴을 필두로 맨유는 예상을 뒤엎고 6연승을 하는 기염을 토해내며 기량을 과시했고, 베컴을 비롯한 맨유의 유스팀 선수들이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이자 언론들은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일거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매경기 어느 팀에게도 뒤지지 않는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맨유의 아이들, 퍼거슨의 아이들은 그렇게 등장하였다.




14.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003~2009)

기록 : 292/118 경기/골

수상 : 발롱도르 1회, UEFA 올해의 팀 4회, 브라보 어워드 1회, FIFA 올해의 선수상 1회, UEFA 클럽 올해의 선수 1회

우승 : 프리미어리그 3회, FA컵 1회, 리그컵 2회 커뮤니티 실드1회, UEFA 챔피언스리그 1회, FIFA 클럽월드컵 1회


호날두曰 "내가 맨유에 왔을 때 난 28번의 등번호를 원했다. 하지만 퍼거슨 감독은 no, 넌 7번을 달게 될거야 라고 말했다. 난 정말 놀랐다. 왜나하면 베컴이 그 셔츠를 입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도전을 했고 그 후로 7번은 내게 있어 행운의 숫자가 됐다. 난 그 셔츠와 함께 축구에 있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었다"

2002~03시즌 스포르팅에서 데뷔한 호날두는 03년 퍼거슨 감독의 러브콜을 받고 맨유로 이적했다. 그는 탁월한 재능이 있음에도 끊임없이 노력했고, 이적 첫 해부터 40경기에 출장한 호날두는 이듬해엔 완벽한 주전 자리를 꿰찼고, 0708시즌엔 49경기 42골을 넣었다. 그리고 그해 발롱도르를 수상하였다. 08~09시즌에는 경력에 정점인 트레블을 해 맨유에서 이미 해볼꺼 다한 사나이였고 이는 그가 레알에 가서 활약을 하는데 일조해 더욱 슈퍼스타가 되어 메날두의 시대를 만들었고, CR7이란 전 세계 7번 중 현재진행형 정점이란 명칭과 브랜드를 출범했다. 최근엔 국대에서 못한다는 오명을 씻고 유로2016에서 우승했다.



15. 마이클 오웬(2009~2012)

기록 : 52/17 경기/골

우승 : 프리미어리그 1회,리그컵 1회,커뮤니티실드1회

잉글랜드의 윈더보이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마이클 오웬, 맨유의 상징 7번 계보의 일부가 되었다. 레알마드리드에 간지 1년만에 프리미어리그 뉴캐슬로 복귀했던 윈더보이. 4시즌 후 뉴캐슬에서 방출되고 자기자신을 홍봏며 새로운 팀을 찾았다. 그러던 중 계약 제의가 들어왔는데 맨유였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같이 점심이나 한끼 먹자고 그를 불렀고 화려했던 리버풀 시절을 떠올리며 그를 높이 평가했다. 자신의 가치를 다시 입증하기 위해 오웬은 맨유로 왔고, 팀의 조커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다.



16. 안토니오 발렌시아 (2009~)

기록 : 227/21 경기/골

수상 : PFA베스트 11 1회

우승 : 프리미어리그 2회, 리그컵 1회, 커뮤니티 실드 2회

토탈 풋볼을 외치는 현 축구계에서는 보기 드문 클래식 윙어의 플레이스타일이면서 공을 잡은 뒤 측면을 따라서 광속 드리블 이후 수비를 제치고 날리는 크로스를 보여주며 맹활약을 하였다. 11~12시즌 중반에는 맨유에 전념하겠다며 자신의 에이전트를 해고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맨유에 있어서 7번의 상징성에 무게를 느끼고, 자신의 그릇이 아니라 판단 스스로 번호를 반납했던 선수이기도 하다.



17. 멤피스 데파이


자타공인 맨유 최악의 7번이다. 7번의 암흑기가 곧 맨유의 암흑이. 네덜란드 득점왕이란 복권형태로 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맨유로 이적하고 첫해에 당당히 7번을 달라고 했으나, 이복권은 꽝이였다. 하다못해 초반에 잘한 디마리아와는 다르게 어떤 활약도 못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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