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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맨유에 대해서 알아보자(2)

Beat. 2016. 9. 22. 23:18

유스 시스템


맷버스비 감독

맨유 감독 부임 20년 동안 영입 금액 총 0.1M

맨유 감독 부임 20년 동안 돈 주고 영입한 선수는 20명

잉글랜드리그 최초 최저가 우승[1952, 1956, 1965, 1967 : 0M]

역대 최저가 챔스 우승[1968 : 0M]




유스팀을 쳬게적으로 만든 세계최초의 팀은 버스비감독의 맨유다. 1930년 최초 유스학교를 설립했으며, 유스팀을 만든 왈더 클릭머와 맷 버스비 감독, 지미 머피 코치는 환상의 궁합이였다. 이들은 향후 계획 또한 일치했다.


왈더 클릭머는 공로를 인정받아서 리그 협회에서 골든 메달을 수여받았으며, 지미 머피도 유스 축구 코치계에서 전설로 통하고 있다. 이들이 이끌었던 맨유유스팀은 FIFA 세계 유스 클럽 대회와 잉글랜드 FA유스컵부터 재패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1군으로 자리잡으며 역사상 최연소 우승팀(잉글랜드)이 되었다. (평균 연령 22세)


다른 클럽들 또한 유스시스템의 중요성을 깨달으며 따라하기 시작했으며 유스팀이 서서히 만들어가지기 시작했다.(아스널 1954창설, 바르셀로나 1970, 레알 마드리드 1960년도 창설)


잉글랜드 클럽 최초 유럽 무대 참가


1955년 유로피언컵(챔피언스리그)이 만들어졌고, 당시 규칙은 리그 1위만 출전 가능했기 때문에 1955~56 우승으로 출전 자격을 얻었으나 FA의 반대로 무산이 되었다.


하지만 맷버스비 감독이 FA에 찾아가 항의했고 1957~58 시절에는 유로피언컵에 참가하게 되었고 이후부터는 다른 우승팀들도 유로피언컵에 나서게 되었다.




위닝 멘탈리티


퍼거슨 감독이 은퇴하면서, 후임 감독을 모색하는 와중에 맨유의 상징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퍼거슨 감독이 곧 맨유였기 때문에 후임자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기준을 퍼거슨감독이 가진 장점들-

1. 장기적인 팀을 이끌 수 있는 감독

2. 감독 전권 위임

3. 유스시스템

4. 리빌딩

5. 전술의 유연성

-을 고려하여 EPL 장기감독 3위 모예스, 아약스 유스로 유명한 루이스 반 할 두명의 감독을 겪고 난 후 지금 맨유에게 그 어떤 것 보다 필요한 것은 퍼거슨감독의 27년의 감독생활을 가능하게 했던 수많은 우승 트로피라는 것이다. 뮌헨 참사, 누캄프의 기적, 수많은 우승트로피가 이어온 맨유의 전통 그게 바로 위닝 멘탈리티이다.


2002년 1월 1일 퍼거슨감독은 드디어 맨유감독에서 물러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퍼거슨감독은 평생 축구에 인생을 바쳤고 모든 것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퍼거슨 감독은 하루전 환갑잔치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의 아내 캐시가 그의 발을 걷어 차며 말했다. '당신이 은퇴하지 않는 것으로 우리가 결정했다'라고 그걸로 끝이었다.




이사건은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1. 이사건으로 스포츠계의 어겨질 수 없다고 여겨졌던, 한 인물의 스포츠 잉ㄴ생에 2막이나 앙코르 공연은 없다는 규칙을 박살내 버렸다. 스포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언제 그만둬야할지 잘 파악해야 한다. 하지만 그가 은퇴하지 않기로 결심한 후 2013년까지, 퍼거슨은 이미 높은 곳에 올라가있던 맨유의 이미지와 이윤을 오히려 더 향상시켰으며, 젊은 감독들에게도 절대 지지 않았다. 27년 동안 수많은 상대와 싸우며 대부분은 이긴 상대들을 꺾은 무기는 퍼거슨의 위닝 멘탈리티였다.


2. 누캄프의 기적 챔스 결승에서 퍼거슨감독의 맨유는 바이에른뮌헨에게 1점차로 지고 있었다. 퍼거슨은 마지막 승부수로 두명의 교체카드르르 사용했다. 정말 기적같은 1분이 지나가 두명의 교체선수는 각자 한 골씩을 기록하였다. 베컴이 찬 2번의 코너킥이 셰링엄과 솔샤르의 골로 승부를 뒤집어버리고 말았다. 굳건했던 뮌헨은 무너지며 맨유가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렸고 급기야는 트레블을 달성하며 사상 최고의 대업을 이루었다. 당시 유에파회장이었던 레나르트 요한손은 경기종료 2분전에 VIP 박스에서 나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뮌헨에게 상을 수여하러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때 맨유의 대부인 보비 찰튼 경을 지나가면서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또한 유에파 스태프들은 이미뮌헨의 색깔 리본을 단 빅이어를 들고 있었다. 레나르도 오한손 유에파 회장의 엘레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맨유가 역전을 한 후 였다. 이 날 경기 후 퍼거슨 감독은 가장 유명한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Football. Bloody hell(축구? 말도안되)'


99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이 나에겐 의심할 여지 없는 최고의 순간이었다. 단순히 극장골이 아니라 팀 전체가 하고자 하는 의지가 대단했기 때문이다. -퍼거슨-


트레블은 누구에게나 굉장한 업적이다. 하지만 평생 같이 자라온 친구들과 같이 우승하면 더 좋다. 우리는 여섯명의 사진이 있어요. 챔프 컵과 같이 찍은 우리 중 일부는 12살 부터 친구예요. -니키버트-


모든 일이 한꺼번에 맞아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평범한 젊은 선수들이 갑자기 새로운 시대를 사잊ㅇ하게 되었고 위업을 달성했죠.

12살때부터 함께 자라온 친구들과 트레블을 차지하는 일이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요? 전 확신 못합니다. 다시 일어날지 모르겠어요. 축구의 미래를 몸르겠어요. EPL에서 6~7인의 동료들이 이런 업적을 재현하긴 어려울 겁니다. -개리 네빌-


맨유에서 뛰는 걸 꿈꾸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일어날 수 없는게 현실이죠. 저희는 행운아죠. 어렸을 때부터 함께 뛰며 1군에 올라왔죠. 이것 또한 힘들일입니다. 다시 이런일이 있을까요? - 폴 스콜스-


캄프누의 기적은 대단한 경기였다. 우린 경기 마지막 몇분동안 엄청난 압박감을 받았죠. 전 90분이라는 시간을 보고 이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두명의 교체 선수가 기적을 만들어냈어요. 무승부도 불가능 하다 생각한 순간 셰링엄이 동점골을 넣었을 때 저는 해방감을 맛보았죠. 연장전을 대비해야 했는데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죠. 그리고 숄샤르가 결승골을 넣었죠 -야프 스탐-




3. 1957년 2월 6일 세르비아 수도인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챔피언스리그 8강 경기에서 맨유가 레드스타 베오그라드를 물리치고 4강 진출을 확정지은 뒤 귀국하던 도중 비행기가 뮌헨에서 추락하였다. 이 사고로 맨유의 주장이었던 로저 바인 및 7명의 선수가 숨졌고 당시 최고의 실력을 자랑했던 던컨 애드워즈도 치료 도중 사망하면서 8명의 선수와 코칭 스태프, 구단 직원, 경기를 취재하러 간 언론인 등을 포함 23명이 세상을 떠났다. 당시 팀의 평균 연령은 23세에 불과했다. 게다가 목숨을 건진 선수들 역시 다시는 축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부상을 당해 쓸쓸히 은퇴하고 말았다.


사고 당시 버스비감독은 비행기 밖으로 튕겨나가 땅바닥에 내동이쳐졌다. 처음 그의 상태를 진찰한 의사는 소생 가능성 희박이라는 판정을 내렸을 정도였다. 그러나 맷 버스비 감독은 초인적인 정신력의 소유자 였다. 실낱 같은 생명줄을 잡고 있던 중 지미 머피 코치에게 '우리들의 깃발을 계속 휘날려주게'라고 당부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이 사건 이후 클럽이 해산될 것이라고 축구계는 생각했지만 이러한 고난속에서도 맨유는 포기하지 않았고 기적적으로 살아난 보비찰튼을 중심으로 새로운 팀을 개편했다.


우리는 맷버스비 감독을 다시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돌아온 것은 클럽의 모든 이들에게 큰 힘이 되었죠. 맷버스비 감독이 복귀할 것이라고 들었을 때 (올드트래포드에서 열린 경기에서 알려졌다) 온 경기장이 정말 눈물바다가 되었죠. 대단한 일이었고 동시에 아픈 일이였죠. 당신도 알겠지만 정말 마음을 흔드는 일이잖아요 -윌프 맥기네스(전 맨유감독)-


이때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최고의 선수 두명이 맨유에 합류하게 된다. 아직도 올드 트래프드의 왕으로 불리는 데니스 로와 유럽에 펠레라 불리는 조지 베스트다. 1967년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부활을 알린 맨유는 이듬해인 1968년 4강전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꺾은 뒤 결승에서 에우제비오가 이끄는 벤피카를 물리치고 드디어 챔피언스리그에 우승을 차지했다. 뮌헨 참사, 그리고 10년 후 기적적인 우승은 맨유 신화를 창조했고, 당시 국민들은 이 신화창조에 매료되어 버렸다.

맷 버스비 감독 맨유 홈구장 올드트래포드 정면에는 그의 동상이 서 있으며 경기장 앞 도로도 그의 이름을 땄을 정도로 그의 위닝 멘탈리티는 맨유 정신의 상징이다.




3편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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